
영주권은 미국 생활에서 무게가 다른 서류다. 신분이 걸린 거라 대충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준비하면서 제일 신경 쓴 것도 서류였다. 한국 서류 떼고, 번역하고, 공증까지 붙여서 변호사한테 넘기는데, 그중에서 번역이랑 공증에 손이 제일 많이 갔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되니까 그런 거다.
영주권 해본 사람은 안다. 문호가 열려서 접수할 수 있게 되면(문호는 비자 불러틴에서 확인한다) 하루라도 빨리 넣고 싶다. 그런데 번역이니 공증이니 하면서 시간 쓰는 게 그렇게 아깝다. 서류가 급해서가 아니라, 얼른 넣고 심사부터 시작하고 싶은데 그 앞에서 발이 묶여 있으니까 그렇다. 그래서 이 번역·공증을 빨리, 두 번 일 안 하게 끝내는 게 은근히 중요하다.
준비하다 보면 이런 얘기를 듣는다.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건 한국에서 영문으로도 발급된다고. 그럼 영문으로 뽑으면 번역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 싶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진행한 영주권 서류에서는 영문증명서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이유는 뒤에 적었는데, 알고 나면 별거 아닌데 모르면 두 번 일 하게 되는 함정이다. 내가 진행한 케이스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이 상세본과 번역본을 요구했고, 안내에 따라 공증까지 준비했다. 이 글은 그 번역·공증·아포스티유를 내가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 왜 영문 발급에 혹하면 안 되는지 순서대로 적은 거다.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 건 번역과 공증이었다
처음에는 영문으로 발급되는 서류가 있으니 번역을 안 해도 되는 줄 알았다.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서는 가족관계 정보를 영문으로 표시한 영문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고, 정부24에서는 영문 주민등록표등본을 발급할 수 있다. 다만 영문증명서에 담기는 정보와 국문 상세증명서의 정보 범위는 같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그럼 번역은 필요 없겠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진행한 케이스에서 변호사 사무실이 요구한 것은 정보가 더 자세히 담긴 상세본과 번역본이었다. 괜히 일반 영문본만 준비했다가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 어떤 서류를 요구하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미국 내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도 가족관계 서류 영문 번역 확인 서비스와 번역 샘플을 제공하는 걸 보면, 실제로는 원본을 번역해서 제출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이걸 미리 알았으면 시간을 훨씬 아꼈을 것 같다.
번역은 반드시 공인 번역업체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와 원문 언어에 능통한 번역자가 전체 내용을 정확하게 번역하고 인증문에 서명하면 된다. 다만 본인이 직접 번역하는 방식은 담당 변호사나 제출 기관이 받아들이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크몽이나 숨고 같은 플랫폼에서 번역가를 구할 수도 있고, 요즘은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라인 업체도 많다. USCIS는 공인 번역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번역했다는 번역자 인증문이 포함된 번역본을 요구한다. 다만 변호사나 제출 기관마다 요구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 진행하는 곳의 안내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공증은 UPS에서 15불에 끝났다
공식 기준상 USCIS는 일반적으로 번역문에 별도의 공증까지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진행한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공증된 번역 서류를 요청해 안내에 따라 준비했다. 변호사나 제출 기관마다 준비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 공증하기 전에 담당자에게 필요한지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나도 당연히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별거 아니었다.
공증 전문으로 하는 데나 UPS 공증해주는 매장 가면 된다. 나는 UPS에서 했었다. 서류를 제출하고 그 자리에서 서명만 하면 나머지 공증 절차는 직원이 알아서 진행해 준다. 서류당 15불 정도 했었다.
하나 짚고 갈 게 있다. 미국 공증(notary)은 번역 내용이 맞는지를 보증해주는 게 아니다. 서명한 사람이 실제 본인인지 확인해주는 절차다. 그래서 공증하는 사람이 이 서류 내용 책임은 본인한테 있다고 고지해준다. 하긴 번역은 내가(아니면 다른 사람이) 한 거지 공증인이 검증한 게 아니니까 당연한 거다. 서명하고 도장 받으면 공증은 끝이다. 나는 그 서류로 변호사 사무실에 제출하고 무사히 영주권 받았다.
아포스티유는 왜 느리고, 언제 필요한가
여기서 아포스티유 얘기가 나온다. 어떤 데는 번역·공증으로는 부족하다고 아포스티유로 처리하라고 한다. 아포스티유는 헤이그 협약 가입한 나라들끼리 공문서를 서로 인정해주는 국제 인증인데, 한국이랑 미국은 둘 다 가입국이라 이 둘 사이엔 대사관 인증 없이 아포스티유 하나면 된다.
문제는 속도다. 한국에서 발급된 서류의 아포스티유는 한국 외교부·법무부(재외동포청)에서 받거나 온라인 e-아포스티유(apostille.go.kr)로 받는다. 미국에 있는 내가 한국 발급 서류 아포스티유 받으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린다. 반면 공증은 UPS에서 당일에 끝난다. 공증과 아포스티유는 같은 절차가 아니다. 공증은 서명 행위를 확인하는 절차이고, 아포스티유는 문서에 표시된 공무원이나 공증인의 서명·자격을 외국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인증하는 절차다. 제출 기관이 아포스티유를 요구한다면 단순 공증만으로 대신할 수 없다.
다행히 이민 서류는 USCIS가 아포스티유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진 않아서, 나는 공증으로 갔다. 근데 이것도 케이스마다 다르니까, 아포스티유 하라고 하면 그 기관 기준을 따르는 게 맞다.
미국 서류를 한국에 보낼 땐 반대다
참고로 방향이 반대면 절차가 달라질 수 있다. 위임장처럼 미국에서 작성한 서류를 한국 기관에 제출할 때는, 해당 기관이 요구하는 방식에 따라 총영사관에서 서명 확인을 받거나 미국 공증 후 아포스티유를 받는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한국에서 사용할 위임장을 작성해 LA 총영사관에서 서명 확인을 받았다. 다만 모든 위임장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먼저 한국에서 서류를 받을 은행이나 관공서, 등기소 등에 필요한 인증 방식을 확인해야 한다.
미국 공증을 받은 뒤 캘리포니아 Secretary of State에서 아포스티유를 받아 보내는 방법도 있다. 우편으로 신청하면 배송까지 포함해 시간이 걸릴 수 있지만, LA나 새크라멘토 사무실에 직접 접수하면 당일 처리될 수도 있다. 결국 영사관과 아포스티유 중 어느 방법이 맞는지는 한국에서 서류를 받을 기관의 요구사항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이 글의 주제인 한국 서류를 미국에 제출하는 경우와는 방향이 반대라 자세히 다루지는 않지만, 두 절차를 혼동하기 쉬워 간단히 짚어둔다.
정리하면
영문으로 발급된다는 말만 믿고 준비하지 말 것.
증명서가 영문으로 발급되기는 하지만, 내가 진행한 케이스에서 변호사 사무실이 요구한 것은 정보가 더 자세히 담긴 ‘상세본’이었다. 상세본이 필요하다면 번역본을 함께 준비해야 하고, 공증 여부는 변호사나 제출 기관에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상세본을 번역하고 번역자 인증문을 붙일 것.
번역자 인증문에는 이름·주소·서명·날짜 등이 들어간다. 본인이 직접 번역할 수 있는지는 담당 변호사나 제출 기관에 먼저 확인해야 한다.
공증이 필요한지 확인할 것.
공증은 USCIS의 일반적인 공식 요건은 아니다. 다만 변호사나 제출 기관에서 요구할 수 있으므로, 비용을 들이기 전에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포스티유는 제출 기관에서 요구할 때만 준비할 것.
한국에서 발급된 서류는 한국의 권한 있는 기관이나 e-아포스티유를 통해 아포스티유를 받을 수 있다. 처리 방법에 따라 시간이 걸릴 수 있으므로 미리 확인해야 한다.
미국에서 작성한 서류를 한국에 보낼 때는 절차가 달라질 수 있다.
위임장 등의 서류는 총영사관에서 서명 확인을 받거나, 미국 공증 후 캘리포니아 Secretary of State에서 아포스티유를 받는 방법이 있다. 어떤 방식을 이용할지는 한국에서 서류를 받을 기관의 요구사항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
최종 요건은 반드시 본인의 변호사나 제출 기관에 확인할 것.
결국 핵심은 하나다. 영문으로 발급된다는 이유만으로 필요한 정보가 모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먼저 변호사나 제출 기관에 영문증명서로 충분한지, 국문 상세본과 번역본이 필요한지 확인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영문증명서만 준비하면 될 줄 알았다가 다시 상세본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필요한 서류의 종류를 정확히 확인한 뒤 준비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공증은 USCIS의 일반적인 필수 요건은 아니었지만, 내가 진행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요구해 함께 준비했다.
이 글은 내가 직접 영주권 서류를 준비하면서 겪은 경험을 적은 것이다. 나는 변호사가 아니며, 필요한 서류와 번역·인증 방식은 비자 종류, 제출 기관, 담당 변호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공증 비용이나 아포스티유 처리 기간도 시기와 지역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진행하기 전에 반드시 본인의 담당자와 해당 기관에 확인하는 것이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