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특히 오렌지카운티(OC)에 막 오면 사소하지만 꼭 정해야 하는 게 있다. 집 물을 어떻게 마실 것인가. 수돗물을 그냥 마실지, 생수를 사다 먹을지, 정수기를 달지, 물을 배달시킬지 — 선택지가 은근히 많다.
사실 내가 제일 걱정한 건 수도국 물의 수질이 아니라, 미국은 오래된 집이 많다 보니 수도관이 중간에 이물질을 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우리가 정착하며 정한 방식과, 그 걱정을 어떻게 확인·해결하는지, 알아본 다른 옵션들까지 정리해 둔다.
우리 집은 — 언더싱크 RO 정수기 (직접 설치)
우리는 싱크대 아래에 언더싱크 정수 필터를 쓴다. 역삼투압(RO)이 되는 5단짜리다. 설치는 업체를 부르지 않고 직접 했다. 교체용 필터는 해당 업체나 아마존에서 사고, 교체 자체는 크게 귀찮지 않다. 다만 이 정수기는 (주방 수도 전체가 아니라) 따로 단 전용 꼭지의 마시는 물만 정수한다.
수돗물은 설거지할 때나 쓰지, 마시지는 않는다. 마시는 물은 이 언더싱크 RO 정수로 해결하고, 밖에 들고 다닐 땐 코스트코 작은 생수(16.9oz·약 500ml)를 따로 산다.

지금 쓰는 건 APEC ROES-100(에센스 5단)이다. 온라인으로 산 거라 정확한 구입가는 기억나지 않는다 — 현재 가격은 아마존에서 'APEC ROES-100'으로 확인하면 된다. 필터는 4개(침전·카본류)를 1년마다, RO 멤브레인 1개를 2년마다 갈면 되는데, 제조사 안내도 전처리 필터 6~12개월·멤브레인 2~4년으로 비슷하다. 교체 필터 값은 전체 세트 약 $110 선, 유사 제품들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도 있어 유지비가 크진 않다.
수돗물, 그냥 마셔도 되나 — 확인하는 법
미국 수돗물은 EPA(환경보호청) 기준으로 규제되고, 각 수도국은 매년 수질 리포트(Consumer Confidence Report, CCR)를 공개하게 되어 있다. "우리 동네 물이 안전한가"는 감이 아니라 이 리포트로 확인할 수 있다.
알아보니 얼바인·터스틴 일대를 담당하는 얼바인 랜치 수도국(IRWD)의 경우, 연간 25만 건 이상 검사를 하고 리포트상 모든 기준을 충족하며 PFAS도 검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OC는 지역마다 수도국이 다르니(도시·지역별), "내 수도국 이름 + water quality report / CCR"로 검색하면 우리 동네 물 리포트를 볼 수 있다. 우편으로도 매년 안내가 온다.
그래서 "마셔도 되나"는 각자 리포트를 보고 판단할 문제다. 다만 우리는 정수·생수로 해결하는 편이다.
진짜 변수는 '오래된 집 수도관' — CCR엔 안 나온다
앞서 잠깐 말한 오래된 수도관 걱정 — 이걸 조사해봤다. 이건 실제로 CCR의 사각지대다 — CCR은 수도국이 내보내는 물(정수장~수도 본관)까지만 보증하지, 그 물이 우리 집 수도꼭지까지 오는 사이 배관이 더하는 건 안 잡힌다.
미국은 1986년에야 상수도용 납 파이프·납땜을 금지했다. 그 이전에 지어졌거나 배관을 안 바꾼 집은 납관·납땜, 오래된 아연도금관(녹·이물질)이 남아 있을 수 있다. 특히 수도 본관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납 서비스 라인이 있으면 수돗물 납의 절반 이상이 여기서 나온다고 한다. 즉 수도국 물이 깨끗해도 내 집 수도꼭지 물은 다를 수 있다.
확인은 내 집 수돗물을 직접 테스트하면 된다. 아마존·마트에서 파는 납 테스트 키트가 있는데, 즉석 스트립형(몇 분)부터 시료를 공인 랩에 보내 정밀하게 재는 것(약 일주일)까지 있다. 오래된 집이거나 아이가 있으면 한 번 재보는 게 마음 편하다.
대처는 결국 정수인데, 여기서 방식이 중요해진다 — 납·이물질은 아무 필터나 잡는 게 아니라 NSF 53(납 인증)이나 RO라야 잡기 때문이다. 우리가 냉장고 물 대신 언더싱크 5단 RO를 쓰는 실질적 이유가 이거다(침전 프리필터가 녹·이물질을, RO 멤브레인이 납을 검출한계 이하로). 어떤 필터가 어디까지 잡는지는 뒤에서 따로 정리한다.
석회(경수)는 괜찮나 — 이건 건강 문제가 아니다
물 얘기에서 납만큼 자주 나오는 게 석회, 즉 경수(hard water)다. 수도꼭지에 하얗게 끼는 것, 그릇에 남는 물자국이 다 이거고, 남가주는 물이 센(hard) 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납과 달리 석회는 좀 다르다 — 걸러야 할 이유가 '건강'이 아니다.
석회의 주성분인 칼슘·마그네슘은 오히려 몸에 필요한 미네랄이라, EPA도 경도(hardness)를 건강 기준이 아니라 미관상 기준으로만 두고 법적 한도도 없다. WHO도 경수가 건강에 해롭다는 근거는 없다고 본다. 정리하면 납은 건강 문제, 석회는 '불편'의 문제다.
불편은 실재한다 — 수도꼭지·샤워의 하얀 자국, 그릇 물자국, 온수기·가전에 스케일이 껴 수명이 주는 것, 비누가 잘 안 풀리고 씻고 나면 피부·머리가 뻣뻣한 느낌. 이걸 잡으려면 연수기(water softener)를 인입구 쪽(집 전체)에 단다. 다만 인입구 설치는 우리가 안 해봤고, 비용·관리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건 짐작이다.
정수 방식별로 뭐가 다른가 — RO·카본·냉장고 필터
그럼 물을 뭘로 거를까. 정수기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 걸러주는 범위가 다르다. 인증 기준(NSF/ANSI)으로 보면 대략 이렇다.
역삼투압(RO, NSF 58) — 가장 광범위. 용존 물질(TDS)에 불소·비소·질산염 등까지. 우리 5단 언더싱크가 여기.
카본 필터(NSF 42) — 염소 맛·냄새 위주. NSF 53까지 받으면 납·시스트 등 건강 관련 항목도 일부.
냉장고 정수 필터 — 대개 카본 계열이라 맛·냄새·기본 오염물 정도다. 크기가 작아 RO만큼 광범위하지 않고, NSF 53 인증이 없으면 오래된 배관의 납 같은 건 장담 못 한다. (우리 냉장고에도 작은 필터로 정수된 물이 나오는데, 마셔보진 않았다.)
쿠쿠·코웨이 정수기(렌탈) — 한인들이 많이 쓰는 옵션
한인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는 게 쿠쿠(Cuckoo)·코웨이(Coway) 같은 한국 브랜드 정수기다. 둘 다 미국 공식 렌탈이 있고, 냉수·온수·상온수에 얼음까지 나오는 모델도 있다. 설치(전문 기사)와 필터 관리를 포함해 월 렌탈로 쓰는 구조이고, 올인원 얼음 모델 기준 대략 월 $60~80선(모델·기간·지역에 따라 다름)이다.
솔직히 우리는 안 써봐서 정수·얼음 성능은 직접 평가 못 한다. 다만 구조상 장단점은 분명하다 — 장점은 필터·관리를 직접 안 해도 되는 것, 단점은 매달 나가는 렌탈비.
그래서 "이거 꼭 써야 하나?" 하면 필수는 아니다. 우리처럼 언더싱크 RO + 생수로도 충분하다. 다만 필수가 아닐 뿐, 쓰면 생활의 질은 올라간다 — 아무 때나 뜨거운 물과 얼음을 쓰고, 깨끗한 물을 손 안 대고 쉽게 마실 수 있으니까. 그래서 직접 설치·필터 교체·생수 나르기가 번거로운 집이라면 렌탈이 값을 한다. 정수 성능의 필수품이라기보다 편의(삶의 질) 대 월 비용의 선택이다.
정리하면
우리 방식: 마시는 물은 언더싱크 5단 RO(전용 꼭지) + 휴대용은 코스트코 작은 생수(16.9oz), 수돗물은 설거지용
선택지: 생수 / 코웨이·쿠쿠 렌탈(냉온·얼음·관리 포함) / 다중 필터 정수 / 전체 정수(인입구)
수돗물 판단: 감이 아니라 내 수도국 수질 리포트(CCR)로 확인
석회(경수): 건강 문제 아님(미관·기기 문제) — 스케일 잡으려면 연수기(인입구)
물·수질은 지역과 수도국, 집 상태에 따라 다르고 건강과 관련된 부분이라, 이 글은 우리 경험과 공개 정보를 정리한 것일 뿐 특정 판단·제품을 권하는 게 아니다. 수돗물 음용 여부는 각자 수도국의 수질 리포트를 확인하고, 필요하면 검사를 받는 게 안전하다. 가격·서비스는 시점·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